“나는 한국말 못 해도, 내 아이는 배웠으면”
#. 뉴욕 롱아일랜드의 한인 2세 이 모 씨. 이 씨는 지난달부터 8살 딸을 데리고 매주 주말 한글학교로 향한다.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이 씨의 부모님은 일하느라 바빠 이 씨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 못했다. “성인이 된 후 나를 ‘코리안-아메리칸’이라고 소개했지만, 정작 한국어로는 인사 정도밖에 할 줄 모르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”는 그는 “나는 한국말을 못 하지만, 내 아이는 제대로 배워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했으면 한다”고 전했다. K-팝 열풍, K-드라마의 선풍적인 인기 등에 힘입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, 과거와 달리 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한인 부모들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. “예전에는 누가 물어보기 전까지는 한국에서 왔다는 말도 안했어요.” 1950~1970년대 미국에 도착한 이민 1세대들은 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. 생계 유지 때문에 여력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, 자녀가 주류 사회에 더 빨리 적응했으면 하는 마음에 의도적으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. 미주한국어재단 이광호 이사장은 “이민 초기에는 자녀를 빨리 적응시키기 위해 한국어를 쓰면 꾸중을 할 정도였다”며 “당시에는 한글학교도 몇 개 없어 멀리 사는 한인 자녀들은 의지가 있어도 한국어를 배우기 어려운 환경이었다”고 설명했다. 그리고 2024년 현재, 뉴욕 롱아일랜드시티에서 한글학교를 운영 중인 조이스 김씨는 “아이들 반은 물론, 부모와 함께 한국어를 배우는 클래스도 마감된 상태”라며 “어릴 때 한국어를 배우지 못한 한인 2세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오는 경우가 대부분”이라고 전했다. 부끄럽게만 느껴져 사용을 지양했던 언어에서 자랑스러운 우리의 모국어로 탈바꿈하기까지 수십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.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 김 씨는 “우리 어릴 때는 몇몇 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를 제외하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”며 “지금은 기회가 훨씬 늘어나 많은 2세 부모들이 어릴 때부터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한다”고 설명했다. 뉴욕한국교육원에 따르면 올해 뉴욕 일원에서 운영 중인 한글학교는 총 87개, 학생 수는 7268명에 달한다. 김 씨는 “한글학교 운영 초기에는 10명 중 3명 정도가 교포 학생이었으나, 현재는 절반 이상이 한인 2.5~3세 혹은 한국 혼혈 학생들”이라고 설명했다. 어릴 적 한글을 배운 2세 부모들 역시 자녀를 데리고 한글학교를 찾는다. 뉴저지 참지혜한글학교 권미숙 교감은 “한글학교에 오는 2세 부모들은 크게 세 가지”라며 “본인이 한국어를 못 배운 아쉬움에 자녀를 데리고 오는 경우, 어릴 적 한글학교에 가기 싫었지만 결국 배워 놓으니 성인 된 이후 취업에 도움이 되는 등 활용도가 높아 자녀도 가르치려는 경우, 배우자가 타민족이라 집에서 영어만 써서 외부 기관에서라도 한국어를 배우게 하려는 경우 등”이라고 전했다. 다만 한글학교에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. 권 씨는 “20년 넘게 미국에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지만, 예전에 비해 학생들의 한국어 수준은 떨어지는 추세”라고 밝혔다. 한국어보다 영어 사용이 편한 부모들이 많아지다 보니, 주말에 잠깐 배운다고 해도 실력 향상이 더디다는 설명이다. 권 씨는 “2세 부모들도 한국어를 함께 배운다거나, 집에서도 한국어로 대화하는 비율이 높아져야 제대로 된 한글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”고 강조했다. 글·사진=윤지혜 기자한국말 훈민정음 미주한국어재단 이광호 한국어 교육 한국어 수준